중고등학교 시절,
도시락통과 실내화, 체육복까지 한가득 들어찬 큼직한 가방을 메고
비좁은 시내버스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던 기억이 있다.
버스는 늘 만원이었고, 자리는 몇 개 되지 않았지만,
그때는 참 이상하게도
앉아 있던 어른들이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학생들의 가방을 자연스럽게 받아 올려주던 풍경이 일상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그 손길엔
잔소리도, 의무감도 없었다.
그저 낯선 이에게도 마음을 나눌 줄 알던
정 많던 시대의 따뜻한 몸짓이었다.
무거운 가방보다 더 무거운 건, 그 마음이었다
그 시절엔 누구의 가방이 더 무거운지가 아니라,
누구의 마음이 더 따뜻한지가 중요했다.
말없이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곤 했다.
버스 안은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서로 부대끼며 눈치를 보는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엔 부대낌 속에서 피어나는 배려와 정이 있었다.
때로는 같은 학교 학생끼리 서로 들어주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른이 슬쩍 손을 내밀어 짐칸 위에 얹어주었다.
자리를 내어주는 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어르신이 타거나, 임산부가 올라타면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용히 일어섰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은 늘 당연하듯 정해져 있었고,
그 자리를 내어주는 일은 도덕이 아니라 습관이었고, 일상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배려는,
누군가의 하루에 따뜻한 쉼표가 되었다.
그 시절엔 서로를 눈으로 피하지 않았고, 마음으로 마주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아도 따뜻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외롭다.
배려하려다 오해받을까 두렵고,
가방을 들어주려 해도 스스로 망설이게 되는 시대.
하지만 그 시절엔
사람과 사람이 스며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억 속의 그 시내버스는 좁고 불편했지만,
그 안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마음들이 있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단지 '과거'라는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살던 따뜻한 사람들의 방식이다.
다시, 그 시절처럼
가방을 들어주는 손길,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
말없이 스며들던 그 온기를 되찾고 싶다.
어쩌면 그리운 시절이란,
잃어버린 따뜻함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낯선 이에게 작은 미소라도 건네보기로 한다.
그 시절처럼, 사람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