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5·18은 광주만의 것이 아니다 – 전국화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는 전국적인 관심의 중심이 된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정치권 인사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그만큼 5·18은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다. 그러나 해마다 이 장엄한 기억의 장소가 특정 정당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현실은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특히 선거를 앞두면 5·18의 정치적 이용이 유독 심해진다. 누가 참배했는지, 누가 배제되었는지가 더 큰 뉴스가 되며, 정작 5·18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은 뒤로 밀린다. 민주당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은 있지만, 5·18이 민주당의 전유물처럼 협소하게 다뤄지는 것은 온당치 않다. 5·18은 특정 정당의 상징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역사적 유산이다.

    나는 광주일고 출신이다. 우리 모교에는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항일투쟁을 기념하는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이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회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광주일고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광주의 다른 학교 출신, 또는 다른 지역 출신이 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대표를 맡는다면, 보다 개방적이고 전국적인 기념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역성과 학연을 넘어서는 개방성과 다양성이 민주주의 정신의 확장성에도 부합한다.

    마찬가지로, 5·18기념사업회 역시 이제는 지역 출신 인사만이 아닌 외부 인사에게도 문호를 열어야 할 때다. 진보적이면서도 중도적인 시각을 가진 영남 출신의 역사학자나 사회운동가가 그 역할을 맡는다면, 5·18의 전국화·세계화는 한층 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특정 학교, 특정 정당, 특정 인맥으로만 운영되는 구조는 5·18을 협소화하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나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완성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부심이 퇴색된 듯한 허전함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광주는 ‘포용’보다는 ‘배제’의 정치를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누가 5·18에 참배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협량한 정치적 시선이 오히려 5·18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특정 정파의 잣대로 5·18을 가르고 선을 긋는 ‘소아병적’ 태도가 끝나길 바란다. 5·18은 이념의 깃발이 아니라, 고통과 희생 속에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꽃이다.

    가끔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광주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결코 한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를 꿰뚫은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와 연대의 산물이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힘이다. 그 정신은 이제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5·18은 한국의 것이자, 인류의 것이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처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아시아의 시민들에게 광주는 교과서와도 같은 존재다. 광주가 그들에게 희망이자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지역주의와 진영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정치권도 5·18을 ‘기념’의 수단이 아닌 ‘계승’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5·18이 특정 정당의 정치적 기득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침묵하는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시민운동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광주의 위상은 스스로의 자각과 개방 속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 글쓴날 : [25-05-20 00:15]
    • 장훈남 기자[opinionvie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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