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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콜베어 쇼 종영 발표…“재정 문제일 뿐”이라지만, ‘정치적 외압’ 의혹 확산

콜베어 쇼 진행자

CBS가 간판 심야 토크쇼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쇼(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를 내년 5월 시즌 종료와 함께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CBS 측은 “이번 결정은 어려운 심야 방송 시장 속에서의 순전히 재정적 판단”이라며 정치적 배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정치적 외압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종영 발표는 공교롭게도 CBS의 모회사 파라마운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소송에서 1,600만 달러(약 214억 원)의 합의금을 지불한 직후 이루어졌다. 이 소송은 ‘60 Minutes’ 프로그램에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인터뷰 편집을 문제 삼은 트럼프 측 주장에 따른 것이었으며, 파라마운트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에 달린 스카이댄스(Skydance)와의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의 대표적 비판자였던 콜베어의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폐지된 것은 단순한 ‘재정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다. 콜베어는 최근 방송에서 해당 합의를 “거대한 뇌물(big, fat bribe)”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쇼 종영 소식이 전해진 후 “콜베어가 해고돼 기쁘다”며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직접 환영의 글을 남겼다.

CBS는 수년간 심야 코미디 부문에서 제작비 증가와 시청률 감소 등 어려움을 겪어왔고, 지난해 제임스 코든 퇴출 이후 12시 30분대 토크쇼를 폐지했으며, 그 대체 프로그램인 ‘애프터 미드나잇’ 역시 지난 3월 종영됐다. 하지만 ‘레이트쇼’는 그동안 경쟁 프로그램을 앞서는 시청률을 기록해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익성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내 비판 여론은 정치와 풍자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 집중한다.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과 아담 시프는 CBS의 해명을 두고 “언론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NBC의 세스 마이어스, ABC의 지미 키멜도 트럼프의 비난 대상이 되고 있으며, '데일리쇼'의 존 스튜어트조차 향후 방송 지속 여부에 대해 “새 경영진의 이념이 어떤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국도 사라진 정치 풍자…“코미디의 역할은 누가 이어가나”

풍자 코미디의 위기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상파 방송에서 정치 풍자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췄다. 한때 KBS의 ‘개그콘서트’는 현실 풍자 코너들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치적 부담과 제작 여건 악화로 2020년 종영됐다. 이후 지상파와 종편은 예능 중심으로 재편되며 사회 비판의 기능을 사실상 포기했다.

JTBC의 '썰전'이나 tvN의 ‘SNL코리아’ 등 케이블 중심의 시사 예능도 점차 수명을 다했으며, 현재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일부 정치 풍자 콘텐츠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방송사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율적 ‘셀프 검열’을 강화한 결과, 정치와 권력을 향한 비판적 웃음은 설 자리를 잃었다.

풍자 없는 사회, 권력은 웃지 않는다

콜베어의 퇴장과 한국 코미디의 침묵은 서로 다른 조건 아래 벌어진 일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드러낸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이 풍자를 불편해할 때, 방송은 그 날카로운 혀끝을 잃는다는 점이다. 심야 코미디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콜베어 이후의 행보는 아직 불투명하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팟캐스트와 같은 플랫폼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CBS라는 메이저 플랫폼에서의 영향력은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그가 외친 ‘truthiness(진실스러움)’은 오늘날 풍자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진실처럼 보이지만 거짓에 가까운 말, 그 허상을 걷어내는 웃음을 우리는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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