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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무부 장관 팸 본디 |
성범죄자 제프리 에프스타인 사건 관련 대배심 증언의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 정계가 또다시 격랑에 휘말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에프스타인 사건의 대배심 증언을 공개하라고 법무장관 팸 본디에게 지시했으며, 본디 장관은 다음날 연방 법원에 이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지지층, 특히 극우 성향의 보수 진영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최근 미 법무부가 에프스타인 사망과 관련한 음모론을 부인하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일부 극우 인사들은 본디 장관이 ‘은폐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법원의 승인을 전제로 관련 대배심 증언을 모두 공개하라”고 본디 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는 “에프스타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언론 보도와 과도한 관심”을 문제 삼으며,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시는 공화당 일각에서 요구해온 ‘FBI와 법무부의 전체 수사 자료’ 공개 요구보다는 훨씬 제한적인 수준이다.
증언 공개 가능성 낮아…엄격한 기밀 유지 규정 탓
미국 연방법상 대배심 증언은 범죄 피해자와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된다. 법원의 명시적 허가 없이는 공개가 불가능하며, 그 절차도 복잡하고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본디 장관의 발표가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본디 장관은 트럼프의 지시에 즉각 반응했다. 그녀는 SNS를 통해 “대통령님의 요청을 받들어, 내일 법원에 증언 공개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그녀는 앞서 법무부와 FBI가 공동 작성한 “에프스타인의 사망은 자살이며, 사건은 종결됐다”는 공식 발표와는 상반되는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여전히 수사 기록 전체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법무부와 FBI에 관련 영상 자료와 문서 일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의회 차원의 비구속 결의안도 논의되고 있다.
에프스타인 생전 트럼프와의 관계도 다시 주목
이번 논란은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03년 에프스타인에게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도하면서 더욱 확산됐다. 해당 메시지에는 성적으로 암시적인 그림과 ‘공유한 비밀’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즉각 해당 보도를 부인하며 《WSJ》와 모기업인 뉴스코프 회장 루퍼트 머독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자사 SNS에 “이 거짓되고 악의적인 보도를 출판한 데 대해 WSJ를 반드시 책임지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에프스타인은 2019년 맨해튼 연방교도소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당시 그는 미성년자 성매매 및 인신매매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측근인 기슬레인 맥스웰은 연방 배심원단에 의해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치 쇼인가, 진상 규명인가"…미국 사회 갈등 심화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와 본디의 행보를 두고 정치적 계산이라는 비판과 진상 규명 요구라는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증언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관련 영상과 사진 등 모든 수사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욕 지역구의 민주당 하원의원 댄 골드먼은 본디 장관의 움직임에 대해 “의미 없는 정치적 연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SNS에 “영상과 사진, 녹음 자료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으며, 본디 장관이 진정한 투명성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에프스타인 사건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유력 인사들과의 연루 의혹, 사망 경위에 대한 불신 등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 사건을 넘어 정치·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입과 본디 장관의 대응이 진실 규명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소용돌이로 귀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