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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 출처, 폭스뉴스 |
미국 의회가 9조 원에 달하는 외교지원 및 공영방송 예산을 삭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백악관은 드물게 ‘의회 예산 권한’을 잠식하는 데 성공하며, 행정부 권한 확대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상원은 현지시각 7월 17일 새벽, 찬성 51표 대 반대 48표로 삭감안을 먼저 통과시켰다. 공화당 중진 수전 콜린스(메인),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의원이 이탈표를 던졌다. 이어 하원은 7월 18일 새벽 1시 47분경, 찬성 216표 대 반대 213표로 해당 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공화당 의원 두 명이 반대에 가세했다.
전체 환수 예산 약 90억 달러(약 12조 원) 중 80억 달러는 국무부와 USAID의 해외 지원 프로그램 예산, 11억 달러는 NPR과 PBS 등을 지원하는 공영방송 기금인 공영방송공사(CPB) 예산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 통과 직후 소셜미디어에 “수십억 달러가 낭비되던 NPR과 공영방송 예산을 삭감했다”며 “공화당이 40년간 실패했던 일을 우리가 해냈다”고 자축했다.
“의회의 지갑 권한 무너져…재정 균형 명분에 헌법도 뒷전”
이번 법안은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예산 환수(rescission)’ 법안이었으며, 행정부가 입법부의 예산 편성 권한을 실질적으로 되가져가는 초유의 사례로 기록됐다. 백악관 예산국(OMB)의 러셀 보우트 국장은 “비효율적인 연방 지출을 억제하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일각에서는 “헌법상 권력분립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라는 비판이 나왔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은 “대통령 보좌관들이 의회가 금지한 분야까지 예산을 끊는다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토착 방송’까지 흔들…공영방송 예산 삭감 후폭풍
공영방송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NPR, PBS, 그리고 지역 공영방송사들은 심각한 운영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NPR의 캐서린 마허 대표는 “지역 공동체를 지탱해온 기관들이 근거 없이 해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NPR·PBS의 본사급 조직은 연방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지만, 각 지역 방송국은 CPB로부터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원받는 곳도 많아 올가을부터 편성 감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사우스다코타 공영방송은 “지역 뉴스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정치적 상징 위한 희생”…PEPFAR는 예외
애초 백악관은 에이즈 구제 프로그램인 PEPFAR 예산 4억 달러도 삭감 대상에 포함했지만, 공화당 내 반발에 부딪혀 이 항목은 제외됐다. 요르단·이집트에 대한 지원, 식량지원 프로그램(Food for Peace), 일부 글로벌 보건 사업 등도 최종 삭감안에서 제외됐다.
반대표를 예고했던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공화·사우스다코타)은 “백악관이 부족(tribal) 방송국에 대한 보조금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찬성표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네이티브 방송 단체들은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4조 달러 감세는 괜찮고, 9조 복지 삭감은 정당한가”
민주당은 “불과 몇 주 전에는 4조 달러 규모의 감세안을 통과시키더니, 이번에는 9조 원 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작은 정부’를 외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패티 머레이 상원의원(민주·워싱턴)은 “초당적 예산 합의가 무너지면 향후 모든 정부 예산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조치는 의회 자율성을 훼손하는 위험한 선례”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