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불문하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방송인 홍진경이 6·3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빨간색 상의를 입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이유로 정치색 논란에 휘말렸고, 하루 만인 3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고개를 숙였다. 논란의 본질은 단 하나, 옷의 색깔이 빨간색이었다는 점이다.
그 색이 문제였다. 빨간색은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는 홍진경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해석이 곧 ‘논란’이 되었고, 결국 해명과 사과가 뒤따랐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단순한 색깔조차 자유롭게 입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과연 문명사회의 모습인가?
색깔에 정치적 의도를 부여하는 ‘색깔 혐오’의 시대
홍진경은 단지 해외 출장 중 스웨덴에서 디자인이 재미있다고 느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정치적 문구도 없고, 정당 로고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중 일부는 옷의 색만을 보고 ‘정치적 편향’이라 단정했다. 이는 논리도, 맥락도, 근거도 부재한 해석의 폭력이다.
색은 색일 뿐이다. 누구나 파란 옷을 입을 수 있고, 누군가가 노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정의당 지지자로 단정하지 않는다. 빨간 옷을 입었다고 국민의힘 지지라고 확정하는 건, 표현을 정치적 무기로 몰아가는 정치적 과잉 해석일 뿐이다.
사과의 강요는 자유의 부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이성적 비난이 결국 사과를 “강제”했다는 점이다. 홍진경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제가 잘못했다”고 했지만, 과연 무엇이 잘못인가? 색깔 하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옷장 속의 색까지 검열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유 없는 사과는 자유 없는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진정한 민주사회는 ‘말할 자유’뿐 아니라 ‘입을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지금의 현실은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눈치를 보며 검열되고 자기검열을 강요당하는 위축된 공론장을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중립이 아닌, 정치적 다양성의 존중이다
표현의 자유란 특정 정치적 견해만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이 배제된 표현조차 보호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빨간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사과까지 해야 하는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억압하고 있다.
정치적 해석을 모든 표현에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회의 특징이며, 민주주의와 문명사회의 기본 전제를 위협한다. 문명사회란, 다른 색에 불편함을 느낄지언정, 그것을 억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비문명적 문명사회'를 살고 있다
홍진경의 사례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 사태는 한국 사회의 표현에 대한 집단적 억압, 진영논리에 기반한 정치적 과민증, 그리고 정치 외적 표현조차 정치로 환원해버리는 비문명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색깔 하나에도 사과를 강요하는 사회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이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진정한 문명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