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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면 어땠을까 – 유시민의 설란영 씨 언급, 과연 정당한가

가족의 ‘비행’은 검증 대상일 수 있어도, 출신 배경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유시민 전 장관이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배우자인 설란영 씨에 대해 학력과 성, 사회적 배경을 거론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공직 후보자나 주요 정치인의 가족이 공적 영역에 영향을 미쳤거나 비행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검증과 비판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학력이 낮다거나, 성별이 어떠하며, 경제적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조롱하거나 정치적 논리로 활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유럽 사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선을 긋는다.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는 공직 후보자 본인의 정책, 철학, 이력은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지만, 가족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출신, 학력 수준 등을 언급하며 조롱하는 것은 정치적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배우자나 자녀의 출신 성분을 문제 삼는 것은 ‘사회적 차별’로 규정될 수 있으며, 공인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다. 독일 역시 "개인의 존엄은 불가침"이라는 헌법적 원칙에 따라, 개인의 학력이나 계급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을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도 이제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지향해야 할 시점이다.
출마자의 가족이 범죄나 공공 윤리에 반하는 명백한 비위를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합리적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출신 학교가 초등학교냐 대학이냐, 혹은 직업이 무엇이었냐를 놓고 공인 가족의 ‘격’을 운운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고 반민주적인 행태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그간 날카로운 언변과 분석으로 많은 지지를 받아왔지만, 이번 발언은 그가 경계해왔던 ‘무례한 정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정치적 논쟁에서 인신공격과 계층 조롱이 섞일 때, 그것은 더 이상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상대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언어폭력일 뿐이다.

정치적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자유에는 품격이 따라야 하며, 품격은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공인은 물론 언론과 유권자 모두가 이런 기준을 세워가야 한국 정치의 수준이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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