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이탈리아 국적의 20대 남성을 뉴욕 맨해튼의 초고가 타운하우스에 감금하고 전기고문, 총기 협박 등 끔찍한 폭력을 가한 미국인 암호화폐 투자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맨해튼 지방검찰청은 25일(현지시간), 피의자 존 월츠(37)를 ▲특수납치 ▲특수폭행 ▲불법감금 ▲불법총기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월츠는 전날 경찰에 체포돼 이날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했으며, 법원은 보석 없는 구속 수감과 여권 반납을 명령했다.
"암호화폐 지갑 비밀번호 내놔"…영화 같은 인질극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탈리아에서 온 28세 남성으로, 5월 6일 뉴욕에 도착해 노리타(NoLIta) 지역에 위치한 5층짜리 고급 타운하우스를 방문했다. 이곳은 피의자 월츠가 월 3만 달러(약 4천만 원) 이상을 지불하며 임대하고 있던 주택이었다.
피해자가 집에 들어선 직후, 월츠와 또 다른 남성 공범은 그의 전자기기와 여권을 빼앗고 비트코인 지갑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이들은 약 3주 동안 피해자를 결박한 채 고문하고 협박하며 심리적‧신체적 폭력을 가했다.
피해 진술과 수사기록에 따르면, 월츠와 공범은 전기선으로 감전을 주고, 권총으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조준해 겁을 줬으며, 계단 난간 위에 거꾸로 매달아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또한 그의 가족을 해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극적 탈출…폴라로이드 고문 사진‧총기 다수 발견
이 같은 지옥 같은 상황은 5월 24일 오전 9시 30분경, 피해자가 결박을 풀고 거리로 탈출하면서 끝이 났다. 그는 인근 교통단속 요원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신고를 받은 NYPD(뉴욕 경찰)가 즉시 타운하우스에 들이닥쳐 월츠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수색 과정에서 경찰은 피해자가 결박당한 채 고문당하는 모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 다수, 권총 1정, 전기충격기 등 고문 도구를 발견했다. 피해자는 현재 벨뷰병원에 입원 중이며, 상태는 안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체포된 여성 베아트리체 폴키(24)는 납치와 불법감금 혐의로 별도 기소되었고, 아직 붙잡히지 않은 또 다른 남성 공범도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폴키와 월츠의 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집사도 있었다”…조직범죄 가능성 수사 중
경찰은 현장에서 피해자 외에도 타운하우스에 상주하던 집사 2명을 발견하고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이들이 범행을 방조했는지, 범죄에 이용당했는지는 현재 수사 중이다.
당국은 피의자 월츠가 수천만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자산을 운용해온 인물로 파악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범행 가능성을 열어두고 추가 공범과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 대상 범죄, 글로벌 동시다발
이번 사건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크립토 납치’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고액 암호화폐 투자자를 표적으로 삼아, 신체 자유를 박탈하고 비밀번호를 빼내는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런던, 두바이 등지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범죄가 보고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는 추적이 어렵고 실물 형태가 없기 때문에 범죄 타깃이 되기 쉽다”며 “다중 인증 지갑 사용, 지갑 주소 노출 자제, 신변 보호 강화가 필수”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