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칼럼] ‘코코’가 남긴 질문 – 고릴라에게 사람다움을 묻다


“슬퍼. 고양이 없어.”
수화로 이렇게 표현했던 한 고릴라가 있다. 이름은 코코(Koko).
1971년, 스탠퍼드 대학의 동물심리학자 프랜신 패터슨(Francine Patterson)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미국식 수화(ASL)를 배운 코코는, 약 2,000개의 영어 단어를 이해하고, 1,000개 이상의 수화 단어를 직접 사용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녀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단어를 조합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 죽음을 슬퍼하고, 유머를 구사했다는 사실이다.

코코는 그녀가 아꼈던 반려묘 ‘볼(Ball)’이 죽었을 때, 수화를 통해 “슬퍼”, “고양이, 아프다, 잘 자”라고 표현하며, 몇 주 동안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과학자들에게 충격이었다. 슬픔을 느끼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동물이 인간 외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언어와 감정의 경계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더 나아가 코코는 인형을 품에 안고 ‘베이비(baby)’라 부르며,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자발적으로 어미 역할 놀이를 반복했다. 이는 고릴라의 모성 본능이 단순한 생물학적 충동이 아닌, **기대와 감정이 수반된 ‘사회적 본능’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고릴라의 지능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능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은 추상적 사고나 계산 능력을 기준으로 삼지만, 진짜 지능은 ‘공감’의 능력에 있다.

코코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고릴라의 모성애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더 절절하다. 새끼를 안고 다니며 온몸으로 체온을 나누고, 젖을 물리고, 다른 고릴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모습은 숲속에서 펼쳐지는 ‘무언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어미 고릴라가 죽은 새끼를 품에 안은 채 며칠을 놓지 않고 다니는 장면은 수차례 목격된 바 있다. 슬픔을 이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우리는 직감한다.

반면 수컷 고릴라의 부성애는 다소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무게가 있다. 실버백 수컷은 한 가족을 지키는 **‘무언의 경계자’**다. 싸움을 대신하고, 무리 내 질서를 잡으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놀이에 참여하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점점 흐릿해져가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쩌면 고릴라 속에서 더 뚜렷하게 보인다.

결국 고릴라가 보여주는 지능, 모성애, 부성애, 사회적 유대는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인간다움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잊고 있는 ‘사람다움’을 고릴라가 고요히 되새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코가 수화로 남긴 마지막 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코코, 사랑해. 작별이야.”

그 짧은 수화는 과학을 뛰어넘어 철학이 되었고, 언어를 넘어서 생명이 되었다.
우리가 자연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간결하고 뚜렷하게 알려준 예가 있을까.

오늘도 숲 어딘가에서 어미 고릴라는 새끼를 안고 있다.
그 품이 말하고 있다.
사랑은 언어보다 깊고, 진심은 종(種)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