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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관예우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 법의 이름으로 특권을 파는 사회는 야만이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이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 원칙은 법정 문 앞에서 멈춰버린 듯하다. 퇴직한 판사나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해 이전 근무기관의 사건을 수임하고, 법원과 검찰의 인맥을 활용해 ‘이름값’을 통해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는 구조.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전관예우의 현실이다.

전관예우는 단순한 특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사법정의의 사유화이며,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파괴하는 구조적 병폐이다.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며 쌓은 공적 신뢰와 권위를 퇴직 이후 사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행위이다. 이는 곧 법이 권력이 아닌 돈과 인맥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호를 사회 전체에 보내는 것이며, 정의가 거래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법에 의지할 수 없다.

법은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희망이어야 한다. 그러나 전관예우가 만연한 법정은 돈 있고 인맥 있는 자의 편에 서게 되며, 이로 인해 법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시민은 법을 두려워하거나 체념하고, 사회는 금권주의와 불신으로 피폐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야만의 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문제는 이러한 사법 불신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현실이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에는 전관예우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가 거의 없다. 변호사법은 퇴직 판·검사의 수임 제한을 1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실효성이 없다. 1년이 지나면 전관 출신 변호사는 곧장 고액 수임을 할 수 있고, 대형 로펌의 간판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처럼 여겨지는 구조다.

이제는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처럼, 고위 법조인의 개업과 연금을 연계하는 실질적인 제도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검사장급 이상 법조인은 일정 기간 동안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대신, 우대 연금을 제공하고 명예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의 품위를 지키는 조건 하에서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헌법적으로도 허용될 수 있다.

또한 사건 배당의 전산 무작위화, 전관과 현직 판사 간 이해충돌 자동 회피 시스템, 전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 사건 공개제, 그리고 시민참여재판 확대 및 판결문 전면 공개 같은 제도적 장치들도 병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누가 맡았느냐”가 판결을 좌우하는 시대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는 제도로 지켜져야 하며, 사법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어야 한다. 전관예우를 방치한 채 사법 정의를 말할 수는 없고, 사법 정의 없는 민주주의는 허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법대로 살자’는 말이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전관예우를 뿌리 뽑는 일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제는 용기 있게 묻고 결단해야 할 시간이다.
“이 사회의 법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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