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소속 코리 부커 상원의원이 상원 본회의장에서 단 한 번도 앉지 않고, 식사나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무려 25시간 5분 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연설을 이어갔다. 이는 미국 상원 역사상 최장 연설로, 1957년 인종차별주의자 스트롬 서먼드 전 상원의원이 세운 기록(24시간 18분)을 약 한 시간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기록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주역이 있다. 바로 일주일 동안 밤낮 없이 연설을 준비한 부커 의원의 보좌관들이다.
그림자 속 헌신…15개 바인더에 담긴 진심
부커 의원의 연설은 단순한 장시간 발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구성된 정책 분석, 개인의 경험, 시민들의 목소리가 엮인 이 연설을 위해 그의 보좌진은 15개의 바인더를 준비했다. 이 바인더 안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행정명령, 예산 삭감 항목, 의료 및 교육 정책 변화에 대한 자료, 그리고 시민들의 증언과 사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한 보좌관은 “우리는 이 연설이 단지 항의가 아닌, 기록이자 메시지로 남기를 원했다”며 “그런 만큼 각 문장, 각 주장의 근거가 탄탄해야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내내 불안은 존재했다. “만약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어쩌지?”라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민심은 응답했다…폭발적 반응
연설 시작 16시간 만에 부커 의원의 사무실로 1만 4천 건의 전화가 쏟아졌고, 연설 종료 전까지 총 2만 8천 건에 달하는 지지 전화가 접수되었다. 틱톡을 통한 생중계는 3억 5천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1만 명 이상의 동시 시청자가 부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봤다.
부커 의원은 연설의 마지막을 조지아주 출신 시민권 운동가 존 루이스 의원에게 바치는 헌사로 장식했다. 그는 루이스의 말, “Good trouble(좋은 곤경에 처하자)”를 인용하며, 지금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문제가 아닌, “정의의 위기”에 응답해야 할 도덕적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당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정의가 침묵당하고, 공정이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것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 의료, 의학 연구에 대한 예산 삭감과 관련한 구체적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뉴어크에서 자란 자신의 가족 이야기, 파킨슨병으로 고통받던 아버지, 유색인종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 등에 대해 호소력 있게 이야기했다.
보좌관들 역시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정책자료를 팩트체크하고, 연설 중간에 나올 수 있는 질문에 대비해 다양한 예상문답을 준비했다. 특히 연설 중 동료 의원들의 질의 시간을 이용해 휴식 없이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구성은 보좌관들의 전략적인 설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와 엇갈린 평가
뉴어크의 주민들, 특히 부커의 시장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연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시민권 변호사 라이언 헤이굿은 “그의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섹스 카운티 도시연합 대표 비비안 콕스 프레이저는 “우리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힘이 생긴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뉴어크의 오래된 바인 '크루그스 태번'에서는 “민주당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백악관 대변인 해리슨 필즈는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아닌 가짜”라며 조롱했고, 일부 보수 매체는 “퍼포먼스”라고 평가절하했다.
“모든 정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부커 의원은 연설 도중 진지함과 유머를 오갔다. 뉴어크에서 생산된 M&M 초콜릿에 대한 찬사, 대학 시절 미식축구 얘기, “뉴욕에 풋볼팀은 하나뿐이다. 자이언츠와 제츠는 뉴저지 팀이다”라는 농담까지… 그러나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정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침묵은 공범이고, 중립은 해악이다.”
그의 목소리는 밤새 이어졌고, 그 옆에는 쉼 없이 메모를 넘기고, 타이밍을 맞추며 연설을 유지한 조용한 동료들이 있었다. 이 연설은 비단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닌, 정의를 위해 함께 일어난 사람들의 집단적 헌신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부커는 말했다.
“나는 발언을 마칩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