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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럼프 행정명령, 한국인 원정출산에 직격탄

“미국에서 태어나면 시민권을 준다”는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오는 5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출생시민권 종료’ 행정명령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기로 하면서, 오랫동안 공고했던 미국 시민권 자동부여 원칙이 중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법적 논쟁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온 ‘원정출산’ 문화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사건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일부 고소득층과 유명인들 사이에서 미국 원정출산이 하나의 경로처럼 여겨져 왔다.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지고, 이는 곧 교육, 이민, 병역 회피 등 다양한 특혜로 연결된다는 기대가 작용해왔다. 실제로 매년 수천 명의 한국인이 출산을 목적으로 미국 병원을 찾았고, 이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 자녀’를 안고 귀국했다. 그 자녀들은 이후 대학 입시나 병역문제, 취업에 있어 ‘선택적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문제 삼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민권을 일종의 '상품'처럼 이용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셌고, 병역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겨냥해 "시민권은 특혜가 아닌 자격"이라고 선언했고, 출생시민권 자체를 근본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행정명령이 최종적으로 시행된다면,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은 미국에서 자녀를 출산해도 자동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원정출산은 더 이상 미국 시민권 획득 수단이 될 수 없다. 이는 한국의 일부 계층에만 허용된 ‘특권 통로’가 봉쇄된다는 점에서 시민적 평등과 공정성의 관점에서도 환기할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는 단지 한 행정명령으로 귀결될 사안이 아니다. 헌법 수정 제14조는 미국 시민권의 근간을 이루는 조항이며, 1898년 ‘웡 킴 아크’ 판결 이후 대법원은 줄곧 이 조항을 광범위하게 해석해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기존 판례를 뒤집는 헌법 해석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며, 미국 내에서도 법학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단순히 원정출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도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현상이 생겨났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교육 불평등, 병역 회피, 해외 시민권에 대한 과도한 선망이 불러온 구조적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출생지에 따라 국적이 결정되는 제도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제는 한국 내 국적제도와 병역, 교육 정책 전반에 대한 성찰도 병행돼야 할 시점이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세계 이민자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올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도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특권을 좇는 사회’에서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시민권이 아니라 가치와 제도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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