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중국을 정조준하면서, 그 여파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밀려난 중국산 전기차, 가전제품, 장난감, 철강 제품 등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며,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EU 회원국의 산업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의 보조금 기반 저가 수출공세가 자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긴급 대응에 나섰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세계적인 과잉 생산을 유럽 시장이 흡수할 수는 없다”며 “EU는 덤핑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중국의 수출 물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덤핑 혐의가 확인될 경우 반덤핑 관세 부과를 포함한 강력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최근 구성된 EU 태스크포스는 전기차를 비롯한 전략적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 품목에 대한 가격 조사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유럽은 경제 회복과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양날의 칼날 앞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긴밀한 협력”을 강조하며, 중국 기업들의 스페인 내 투자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중국 공장 설립 발표가 이어졌고, 이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환영받는 분위기다.
반면 독일은 EU 차원의 전기차 관세 인상에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중국이 자국 자동차 산업에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EU를 떠난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중국과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며 실리를 강조했다.
이처럼 각국의 온도차 속에 유럽연합의 대중(對中) 전략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유럽·아시아 연구센터의 테레사 팰런 소장은 “스페인과 폴란드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유럽 내에서조차 중국에 대한 대응 전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편, 브뤼셀은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베이징을 방문해 시장 접근 문제를 제기했으며, EU 측은 “중국의 불법 보조금이 무역 적자의 핵심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유럽은 중요한 파트너”라며 강경 발언을 자제하는 한편, 유럽 내 주요 언론에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부각하는 기사들을 후원하는 등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중국 상무부는 최근 “유럽연합과 전기차 관세 관련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유럽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로듐 그룹의 노아 바킨 수석 고문은 “미국 관세와 중국 덤핑 공세라는 이중고는 유럽 산업에 큰 충격”이라며 “EU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EU-중국 정상회담은 오는 7월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올 여름은 유럽 통합과 전략적 대응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외교 전문가 리아나 픽스는 “지금 유럽은 여름까지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라고 있다”며 “그 이후에 더 어려운 결정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