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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윤석열 대통령의 경로의존성과 자기성찰의 정치


사람의 삶은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속성과의 싸움이다. 그동안 걸어온 길, 익숙한 방식, 익힌 언어와 습관은 때로 우리를 보호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판단을 흐리게 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실패는 바로 이 경로의존성의 함정에 빠진 사례로, 우리 모두가 곱씹어야 할 교훈을 던져준다.

윤 대통령은 오랜 검찰 생활을 통해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직업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단호했고, 상황 판단은 흑백이 분명했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명확한 정답보다는 이해와 조정, 인내와 타협이 우선되어야 하는 세계다. 결국 그는 이 새로운 무대의 문법에 적응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계엄령 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실책이었고, 그가 검사 시절에 익힌 방식으로는 정치라는 복합적인 시스템을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이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 대부분이 각자의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동권 출신은 과거의 투쟁 언어에서, 관료 출신은 행정의 습관에서, 지역 기반 정치인은 타성적인 조직 관리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정치는 지금도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 채,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한 ‘되풀이의 정치’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소의 '자기 수양'이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감정의 틀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 없이는 누구도 경로의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인이 개인의 성찰을 게을리하면, 그 결과는 단지 개인의 실패를 넘어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윤 대통령의 사례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정치는 과정과 결과 모두가 중요하다. 단기적인 성과가 있더라도 과정이 오만하고 협소했다면 결국 그 성과마저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인내와 절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과감한 자기 혁신이다. 경로의존성을 깨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치는 그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책임 있는 영역이다.

정치인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제의 방식에 안주하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존재인가?” 그런 질문을 멈추는 순간, 그는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과거의 유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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