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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법재판관 임명, 국민 신뢰 회복 위한 대개혁 필요하다

오늘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인을 임명했다. 헌법상 절차에 따라 이뤄졌지만, 그 정당성과 신뢰성에 대한 국민적 의문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법기관이자 정치적 쟁점의 최종 판단을 내리는 헌정 질서의 핵심 축이다. 그런데도 재판관 임명이 특정 정파의 입맛에 따라 이뤄지는 현실은, 정치가 사법의 독립마저 집어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는 이미 여야를 불문하고 국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적 권력 쟁탈전의 장으로 전락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사회는 산업과 정보, 민주주의 측면에서 급격히 발전했지만, 오직 정치만은 변화하지 않고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퇴행적 정치놀음에 국민들이 동원되고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은 이제 대대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독일식 모델처럼 국회의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임명되도록 하여 정치적 편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와 함께 헌법재판소 자체를 대법원 산하로 편입해 일관된 법체계 아래 운영할 것인지, 독립기구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도 필요하다.

또한 재판관 자격에 대한 사회적 기준 정립도 절실하다. 헌법재판은 단순한 법률 심판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헌법 질서 위에서 중재하는 고차원적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도 오직 법률가만이 그 자리를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따라서 헌법재판관은 고위 법관 출신이되, 공직에서 일정 기간 퇴직한 이들로 한정해야 한다. 동시에 헌법과 정치의 경계를 이해하는 정치학자나 헌법학자 등 다양한 전문직 출신 인사의 등용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정치적 재판이 법률가의 손에만 맡겨지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눈높이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젠 법조인의 기술 중심 판단을 넘어, 정치성과 공공성을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갖춘 이들이 헌법재판을 책임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신뢰를 되살리는 길은 정치권의 절제와 제도 개편, 그리고 무엇보다 깨어있는 국민의 감시와 참여에 달려 있다. 선전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국민의 냉정한 판단만이 정치의 일탈을 막고, 헌정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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