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주요 무역 상대국들에 대해 전면적인 관세 부과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해, 전 세계 경제 질서에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마치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를 연상케 한다. 당시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 것처럼, 이번 조치 역시 미국이 스스로를 세계 경제 질서에서 분리시키는 ‘해방 행위’로 비유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을 국제 무역 체계로부터 점차적으로 이탈시키려는 신호로 해석되며, 그 여파는 미국 경제의 크기와 세계 무역에서의 영향력으로 인해 훨씬 더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시장의 반발 속에 후퇴하거나, 단기적인 정치적 효과에 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이것이 자유무역의 종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던 방향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지금이야말로 전 세계가 함께 자유무역을 방어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분열되는 무역 전선, 재편되는 글로벌 질서
이번 관세 조치에 대해 각국은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보복 관세 34%를 즉각 부과했으며, 일본·한국 등 이웃 국가들과의 공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유럽연합 역시 자국 시장을 덤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미국과의 협상 중단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다.
MIT의 사이먼 존슨 교수는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유럽, 무역 질서 재편에 대비하는 아시아—이제 미국 중심의 세계 무역 질서는 분열될 수 있다”며 “이 변화는 미국이 아닌 다른 거대한 무역 블록을 낳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자유무역에 기대고 있다. 전 세계가 자국 내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려는 움직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만의 반도체,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 등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관세 전쟁, 가장 큰 피해자는 저소득국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방어수단이 제한된 저소득 국가들이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14% 관세), 케냐·가나(각 10%) 등은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트럼프의 조치로 인해 2025년 세계 상품 무역이 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는 기존 전망보다 4%포인트 낮은 수치다.
그러나 일부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다른 국가들 간의 무역 통합을 촉진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 없이도 재정비되어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다"…트럼프의 현실 인식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조금 정책과 초경쟁적 무역 전략이 미국 제조업을 침식했다고 주장하며, 관세 정책이 이를 되돌릴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그의 전임자들인 오바마, 바이든 대통령 역시 중국과의 무역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오바마는 타이어 덤핑에 35%의 관세를 부과했고, 바이든도 트럼프의 관세를 대부분 유지했다.
MIT의 존슨 교수는 “세계 무역 시스템은 이미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압력에 노출돼 있었다. 일본보다 더 강력하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은 여전히 유효한 성장 경로
존슨 교수와 함께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스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무역은 수많은 가난한 국가들이 번영으로 가는 길목에서 밟았던 공통된 경로”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완전한 자급자족의 세계는 현실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버드대 제이슨 퍼먼 교수는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에게는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세계 자유무역의 방향성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